AI & Poem을 운영하며 저는 매일 기계가 쓴 시 수백 편을 읽습니다. 대부분은 매끄럽습니다. 운율이 고르고, 비유가 단정하고, 어디서 본 듯한 위안을 건넵니다. 그렇게 잘 다듬어진 시들 사이에 정지용의 「향수」나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끼워 두면 금세 결이 다릅니다. 그런데 이상의 「오감도」는 결이 다른 정도가 아닙니다. 아예 매끄러움을 거부합니다. 1934년의 독자들이 신문사에 항의했을 만큼 불편한 이 시는, 모든 것이 매끄러워진 AI 시대에 오히려 낯설게 다시 읽힙니다. 「오감도 시제1호」 전문과 연재 당시의 소동, 시의 형식 실험을 차례로 읽다 보면, 평균값으로 시를 빚는 시대에 이 불편함이 왜 중요한지 보입니다.
「오감도 시제1호」 전문
먼저 시제1호 전문을 읽어보겠습니다. 「오감도」는 1934년 7월 24일부터 8월 8일까지 『조선중앙일보』에 연재된 열다섯 편짜리 연작이고, 아래는 그 첫 번째 시입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띄어쓰기가 없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편집 실수가 아니라 시인이 의도한 형식이라, 아래 읽기 판본에서도 붙여쓰기를 그대로 두었습니다. 한자를 한글로 옮긴 현대 표기이며, "十三人의兒孩가道路로疾走하오"로 시작하는 한자 혼용 원문은 아래 위키문헌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4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5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6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7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8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9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0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1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13인의아해는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와그렇게뿐이모였소.(다른사정은없는것이차라리나았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길은뚫린골목이라도적당하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 이상, 「오감도 시제1호」, 『조선중앙일보』(1934. 7. 24.)
1934년, 신문에서 쫓겨난 시
이상(1910~1937)의 본명은 김해경입니다. 서울에서 태어나 경성고등공업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했고, 조선총독부 건축 기사로 일하다 문학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오감도」는 소설가 이태준과 박태원의 주선으로 『조선중앙일보』 학예면에 실렸습니다. 그런데 '13인의 아해'가 까닭 없이 질주하며 무서워하는 이 시는 곧바로 거센 항의에 부딪혔습니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미친 사람의 글이다, 멀쩡한 신문을 망친다는 독자 투서가 쏟아졌고, 연재는 열다섯 편에서 멈췄습니다. 시작하자마자 떠밀려 내려온 셈입니다.
이상은 1936년 일본 도쿄로 건너갔습니다. 그러나 이듬해인 1937년 2월, 사상이 불온하다는 이유로 '불령선인(不逞鮮人)'이라는 죄목이 붙어 니시칸다 경찰서에 체포되어 한 달 넘게 갇혔습니다. 풀려났을 때 건강은 이미 돌이키기 어려웠고, 그해 4월 17일 도쿄제국대학 부속병원에서 스물여섯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근대인의 불안을 누구보다 날카롭게 적어 내려간 시인이, 그 불안의 한복판인 제국의 수도에서 사상범으로 갇혔다 짧은 생을 마친 것입니다. 발표 당시 조롱받던 「오감도」는 오늘날 한국 모더니즘 시의 출발점으로 꼽힙니다. 너무 일찍 도착한 시가 뒤늦게 제자리를 찾은 셈입니다.
낯섦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오감도」의 불편함은 우연이 아닙니다. 이상은 독자를 편안하게 두지 않으려고 시의 모든 장치를 비틀었습니다. 그 솜씨를 떠받치는 결이 셋 있습니다.
- 숫자와 도형의 시선 — 제목부터가 '조감도(鳥瞰圖)'의 새 조(鳥) 자를 까마귀 오(烏) 자로 바꿔 놓은 말입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지도의 시선에 불길함을 한 겹 입힌 셈이지요. 시 안에서도 1부터 13까지 번호가 기계처럼 나열되고, '막다른 골목'과 '뚫린 골목'이 도형처럼 마주 놓입니다. 정서를 노래하는 대신, 시는 한 장의 불안한 설계도가 됩니다.
- 띄어쓰기를 지운 자리 — 붙여 쓴 문장은 읽는 호흡을 흐트러뜨립니다.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를 읽으려면 독자가 직접 띄어 가며 더듬어야 합니다. 같은 문장이 열세 번 반복되며 쌓이는 동안, 의미보다 먼저 답답함과 조바심이 몸에 옵니다. 형식 자체가 공포의 체험이 됩니다.
- 풀리지 않는 알레고리 — 13인의 아해가 누구인지, 무엇이 그토록 무서운지 시는 끝내 말하지 않습니다. 식민지의 군중이라는 해석, 분열된 자아라는 해석, 근대의 불안 그 자체라는 해석이 갈립니다. 「오감도」는 정답을 숨긴 수수께끼가 아니라, 정답이 없도록 설계된 시입니다. 그 미결정이 백 년 가까이 독자를 붙잡아 둡니다.
눈여겨볼 대목은 시가 끝나는 방식입니다. 마지막에서 시인은 "길은 뚫린 골목이라도 적당하오",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지 아니하여도 좋소"라며 앞의 모든 장면을 슬쩍 무릅니다. 막다른 길이든 뚫린 길이든, 질주하든 멈추든 상관없다는 이 태도는 독자가 애써 세운 해석을 한 번 더 흔듭니다. 불안에는 출구가 없다는 말을, 이상은 결론이 아니라 형식으로 보여줍니다.
AI가 시를 쓰는 시대에, 「오감도」가 불편한 이유
오늘날 AI는 매끄러운 시를 놀랄 만큼 잘 씁니다. AI & Poem 역시 몇 초 만에 운율이 고른 시 한 편을 내놓습니다. 그럴 수 있는 까닭은 거대 언어 모델이 방대한 글에서 학습한 패턴의 평균을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AI가 시를 쓰는 원리에서 살펴봤듯, AI의 문장은 가장 그럴듯한 다음 단어를 잇는 확률 계산의 결과입니다. 평균은 안전합니다. 그래서 매끄럽습니다.
「오감도」는 정확히 그 반대편에 섭니다. 띄어쓰기를 지우고, 같은 문장을 열세 번 되풀이하고, 독자를 일부러 불쾌하게 만드는 선택은 어떤 평균에서도 나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평균을 의도적으로 배반할 때 태어나는 시입니다. AI에게 '오감도풍으로 써 줘'라고 부탁하면 붙여쓰기를 흉내 낸 시가 나오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알려진 파격을 다시 평균 낸 결과이지, 1934년의 독자를 화나게 한 그 최초의 위반은 아닙니다.
여기에서 AI 시대가 시의 무엇을 사람에게 남겨 두는지가 드러납니다. 매끄러움은 기계가 대신 깎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규범을 깨겠다'는 결정, 불편을 무릅쓰고 새로운 형식을 처음 들이미는 모험은 여전히 사람의 몫입니다. 이상이 신문사의 항의를 견디며 밀어붙인 것이 바로 그 결정이었습니다. AI는 어제까지의 시를 매끄럽게 재현하지만, 내일의 시를 처음 불편하게 만드는 일은 사람이 합니다.
다시, 낯설게 읽기
「오감도 시제1호」는 읽을 때마다 매끄럽게 흘러가지 않고 어딘가에서 독자를 멈춰 세웁니다. 그 멈춤이 이 시의 목적입니다. 잘 읽히는 시가 위안을 준다면, 잘 읽히지 않는 이 시는 질문을 남깁니다. 무엇이 우리를 무섭게 하는가, 우리는 왜 까닭도 모른 채 함께 질주하는가. AI와 함께 시를 써 보고 싶다면 AI & Poem에서 직접 만들어 보시고, 그 매끄러운 결과 옆에 「오감도」 같은 시를 나란히 두어 보시길 권합니다. 기계가 잘하는 일과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의 경계가 그 사이에서 또렷해집니다. 정지용의 「향수」, 김소월의 「진달래꽃」, 윤동주의 「서시」와 함께 읽으면 그 결의 차이가 한층 분명해집니다.
아래 1차 자료에서 원문과 시인의 생애를 직접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